칼의 노래 활자중독(book)


.......죽은 여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물컹거리던 젓국냄새와 죽은 면이 어렸을때 쌌던 푸른 똥의 덜삭은 젖냄새와 죽은 어머니의, 오래된 아궁이 같던 몸냄새가 내 마음속에서 화약 냄새와 비벼졌다.

김훈 저 -칼의 노래- 중에서......
 


........편견이란 무서운것이다.

느낌표라는 방송에서 추천하는 책만 팔리는 현 독서계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들에게 '너희들은 우리가 추천하는 이런책이라도 읽어라'...라고 무시당하는것 같아 기분 나쁘다. 그래서 난 그들의 추천도서라면 일단 피하고 본다. 가끔씩 주변사람들을 통해 보긴 했지만, 그런 추천도서란, 언제나 모두에게 읽힐 수 있는 대신 나를 자극하는 감성 혹은 깊이가 없었다. (물론 모두 다라고 말하진 않겠다. 몇몇은 나도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 편견에 사로잡혀-더욱이 대통령 추천도서라고 써있으니 더욱 거부감이 갔다. 대통령은 대통령이지 문학작가가 아니다.-아까운 소설하나를 놓칠뻔 했다는게 이제와 생각하니 아찔하다.

이순신. 임진왜란으로 거의 망해가던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학익진 전법의 구사, 거북선의 창시자. 조선 수전뿐만아니라 세계 전쟁사에 남을 업적을 남김. 그 강직한 성품덕에 모함을 사, 백의 종군함. 노량해전에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전사.

이것이 아마 우리가 보통 알고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한참 단순화된 피상적인 모습이다. 특히나 군부 박정희시대를 거치며 그의 무장으로써의 면모만 과장되게 부풀려져, 그간 그분의 실 모습을 파악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그리고 이 책을 보았다. 거기엔 인간 이순신이 있었고, 삶과 죽음과 허무가 있었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매혹이 있었다.

인간 이순신. 한없는 고뇌와 무인으로의 순결성을 고집하는 남자. 타협을 모르며 정치를 거부하는 남자. 지장으로써의 비상함과 장군으론 조금 의외의 소심함과 다정함...그리고.......약함. 그저 위인전 속의 한 인물쯤으로 생각하던 그가 내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물론 이건 소설이고 실제의 그분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이제 충무공은 내게 있어 더이상 광화문에 서있는 동상이 아니었다. 거기엔 고뇌에 찬 한 인간이 서 있었다.

삶과 죽음과 허무. 그는 언제나 이중 삼중의 적에 둘러싸여있다. 왜라는 당면한 적 외에도 그는 언제나 다른 적들 사이에서 갈등한다. 너무나 커져버린 자신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조정과 선조의 광기는 그를 공격하고, 무수한 무능한 장수들은 그의 발목을 잡는다. 도와주러온 명나라는 그들의 실리만을 쫒아 그를 방해하고. 그속에서 왜는 차라리 신성하다. 단순한 무인이고 싶었던 그에게, 왜는 차라리 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베어넘길 적이라는 단순성 속에서 그는 안도감 마저 느낀다. 자신을 죽이려던 선조는 왜 덕분에 그를 살려두고, 그는 허무 속에서 왜와 마주한다. 그는 언제나 말한다. '세상에는 칼로 베이지 않는 것이 많다고. 세상사 모두가 칼로 베이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우리말의 매혹. 그간 잊고 있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그 재미를, 그 유혹을. 그저 유명한 외국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글쓰기에 감동했다. 하지만 난 결국 어쩔수 없는 한국인이다. 원본을 보고 그 미묘함까지 알아챌 정도의 외국어 능력이 없다면, 역시 내겐 한국산 글이 어울린다. 이 간단한 사실을 칼의 노래를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 그 감칠맛 나는 말맛이란. 정말로 오랫만에 나는, 밤을 새워가며 정신 없이 책을 읽었다. 반전에 반전이 계속되는 추리소설도, 끝없는 환상으로 나를 유혹하는 판타지소설도 아니건만, 나는 끝없는 흥미를 느끼며 단숨에 막힘없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금 느낀다. 이토록 우리말이 아름답다니.

모르겠다. 아직은 책을 읽은지 채 이틀도 안되었고,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제대로 된 냉정한 평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이거하난 말할 수 있다. 난 이런 기분을 느끼려 책을 읽어 온거라고. 그리고 이런 느낌을 맛보는한 독서는 멈추지 않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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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쓰던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
오랫만에 다시 보니 좀 부끄럽구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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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일상애드립 2008/09/26 12:06 # 답글

    제가 가장 좋아했던 교수님께 받은 책이지요,
    지금도 제 책장 어딘가에 있을 테지요.

    '원균'에 대해 읽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만,,,
  • 고블린 2008/09/26 12:23 #

    교수님께 책도 선물받고 좋네요.
    전 교수님과 별로 안친했었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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